리현옥, 중국미사일정보화건설 공신 조선족 장군

성공시대2017-06-01 09:47

지난 12일 습근평주석이 제12기 전국인대 5차회의 해방군대표단 전체회의에 출석해 발언을 했다.

 

이 회의에서 9명 대표가 선후로 군사분야에 관한 발언을 했는데 드물게 한 녀성 소장(少将)이 유난히 눈에 띄였다. 로켓군장비연구원 모 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조선족 리현옥대표였다.

 

1964년에 태여난 리현옥에게는 흑룡강성 리과장원, 북경대학석사연구생, 녀성 소장, 녀성 미사일전문가, 전국우수과학기술일군, 정부특별수당금 향수 등 눈부신 라벨이 많다.

 

2015년 7월 6일, 그는 전 제2포병부대(原二炮部队) 계급승진의식에서 전문기술소장계급으로 승진해 2포 사상 처음이자 유일한 녀장군이 됐다.

 

 

 

흑룡강성 목단강시 한 지식인가정에서 태여난 리현옥은 1982년 17살때 흑룡강성대입 리과장원으로 돼 당시 앞선 북경대학 무선전물리전공에 입학했다. 그가 북경대에 입학할때는 고2학생이였다.

 

1982년 고2 과정을 마친후 고3으로 진학할수 있었고 대입에 참가할수도 있었는데 중학교때 전 학년 1등을 독차지해왔던 그라 과정은 전부 습득했으니 자신있게 대입시험을 선택했다.

 

"그러나 정작 와보니 뛰는 놈 우에 나는 놈이 있었다"고 그는 회억했다. 공부를 힘들게 시작했지만 4년뒤에는 전반 1등으로 본 학과 석사연구생에 추천으로 입학하게 됐다.

 

1990년 석사를 졸업할때 류학열과 비지니스열이 일었다. 우연한 기회에 도사를 따라 전 2포의 령도를 보러 갔을때 앞선 분야의 지식을 배웠는데 미사일부대에서 일하면 꼭 출세할것이라는 그 령도의 조언에 참군했고 전 2포에 입대하게 됐다.

 

1991년 걸프전쟁에서 정보기술이 거대한 위력을 과시했다. 그때까지 군의 정보화건설은 아직 초기단계였으며 전 2포 작전지휘는 아직도 '구령식'을 썼다.

 

1992년 부대가 첫 작전지휘자동화시스템을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28살인 리현옥은 연구팀에서 가장 어린 기술자로서 네트워크총체구축과 실시간데이터전송이라는 요긴한 임무를 맡았다.

 

 

 

몇년간의 노력을 거쳐 지휘자동화시스템이 구축돼 중국전략미사일부대 정보화건설의 시작을 알렸다. 이 프로젝트는 전 군의 '상징공정'으로 됐고 전 군 과학기술진보 2등상을 받았다. 리현옥은 3등공을 받았고 그후 제9기 전국인대대표로 당선됐다.

 

정보화작전의 중요성은 2003년 이라크전쟁에서도 재차 확인됐다.

 

그후 전 2포는 모 연구소 총공정사를 맡은지 얼마 안되는 리현옥에게 모 기동지휘시스템의 연구개발임무를 맡겼다.

 

몇년의 분발을 거쳐 2006년 리현옥의 성과는 군사연습에서 확인됐다. 당시 2포의 수장은 그토록 많은 시스템을 통괄했다는게 대단하다며 녀성이지만 미사일 려장 여러명을 당할수 있다고 높이 칭찬했다. 동 시스템은 국가과학기술진보 2등상을 받았고 리현옥은 2등공을 수여받았다.

 

리현옥은 전 군 일체화 지휘시스템의 총사(总师) 구성원이기도 하다. 그는 6년 시간을 들여 전략미사일부대의 '중국검넷(中国剑网)'을 창설했다.

 

2007년 다수의 의견을 마다하고 지휘정보시스템소프트웨어 자주개발을 제출했다. 3년후 자주지식재산권을 가진 이 신형 지휘정보시스템이 빛을 봤다.

 

2013년 리현옥은 다시 전국인대대표로 당선됐다.

 

최근 몇년의 전국 량회에서 리현옥은 매회 의안을 제출했는데 전부 군 정보화건설과 관련한 내용이다.

 

2013년은 '국가자주 제어가능 기초소프트하드웨어건설발전 추진(推进国家自主可控基础软硬件建设发展)', 2016년은 '기술로 창발성 전투력 제고 추진(用技术推动新质战斗力提升)', 올해는 '군사령역 군민융합혁신체계 가속 구축(在军事领域加快构建军民融合创新体系)'로 습근평주석이 12일 해방군단에서 발언한 주제와 맞물리는것이였다.

 

정보화와 관련해 그는 "정보화는 첨단기술의 대결인데 핵심기술은 구입할수가 없고 단순한 모방으로는 멀리 못간다"고 말했다.

 

업무의 기밀성으로 인해 일상 군사뉴스에서는 리현옥이 행사에 참가했다는 소식이 적다. 보도에서 그의 신분에 대한 표현도 '모 연구소 소장'에 그쳐있다.

 

이에 대해 그는 "우리같은 사람은 인터넷에서 찾기 어려운게 마땅하다"라고 말했다.

 

과학연구일군에 대한 대중의 인상과 달리 생활속에서의 리현옥은 시원시원한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 "좀 도깨비성질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내가 운전하는걸 보면 동북사람이라는게 알린다. 뭐나 뒤지기 싫어한다"고 말했다. 2013년 중앙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학업, 일, 가정생활을 말할때도 솔직함을 보여줬다.

 

리과장원 이야기에서 그는 "어릴적부터 꼬마 대학생이라고 다들 불러줬다. 나 스스로도 대입장원이 된게 자연스런 일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대학생활에 대해 "북경대학에서 나를 관리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어쩌면 반주임선생님에 대한 인상이 별로 없을 정도였겠나"고 했다. 그는 심지어 부모가 다투던 일까지 회상했다. 어머니가 "녀자애가 뭔 일이 그렇게 많냐"고 하면 아버지는 "우리딸이 장차 큰일을 한다"라며 두둔해 나섰다고 한다.

 

"선배들이 나에게 하찮은 일을 시킬때는 나는 시탐해보는건줄 알면서도 참답게 완수했다"고 말했다.

 

이미 걸어온 길을 회상하면서 리현옥은 "나는 원대한 목표라기보다 한발한발 착실히 해나가는 사람이다. 기회만 있으면 꼭 잡는다. 뭘 하든 참답게 하고 견지하면 꼭 잘할수 있다"고 말한다.

 

아들과 대화할때도 "원자탄을 만드는 일만 생각하지 말고 작은것부터 시작해야 큰일을 할수 있다고 타이른다"고 말했다.

 

/본사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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