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민들의 자랑스러운 마을을 가꾸고 싶다"

류설화 기자2018-08-06 10:35

화룡시 화남촌 제1서기 김성걸


"농촌사업은 열기(底气), 화기(和气), 정기(正气)가 흘러야죠"


2016년 1월,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룡성진 화남촌에 파견된 화룡시 심계국 김성걸(1975년생) 제1서기의 사명감이 엿보이는 한마디이다. 빈곤퇴치에 있어서는 집집마다 저마끔의 방안이 있는 것이다. 한집한집 찾아 방문을 거듭한 김서기는 이른바 맞춤형 빈곤퇴치(精准扶贫)의 함의를 정확히 응용하는 동시에 대책도 함께 제기함으로 실효를 높이는 것은 물론 조직의 신임과 촌민들의 인정을 받았다.


로총각 3형제, '빈곤퇴치보다 더 고마운건 삶의 희망을 북돋아준 것'


2016년, 촌에 주재함과 동시에 촌민들의 집을 둘러볼 때의 일이다. 예전부터 이 마을의 로총각 3형제를 말한다면 촌민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보통은 고령나이와 로동력이 없는 것이 마을치부에 있어서 큰 문제가 되는데 이들만은 제외였다. 맏이 조경철(55)씨와 둘째 조경호(54)씨, 막내 조경선(48)씨는 50평방미터가량의 위험주택에서 1.3헥타르의 경작수입으로 어렵게 살고 있었다. 봄이든 가을이든 농사는 절기에 맞춰 파종하고 거둬들여야 하건만 그들은 농사에도, 수입에도 그리 절박하지 않은 모양이였다. 수입은 점점 적어졌고 장가들기도 하늘의 별따기였다. 김서기는 2016년에 화룡시 심계국 빈곤부축 사업조와 함께 노총각 3형제의 집에 들어섰을 때의 광경을 되새겼다.


김성걸 제1서기(중)가 촌민을 도와 일을 하고 있다./류설화 연변특파원


'집에 들어서니 말이 아니였죠. 조선족가정은 보통 아무리 궁핍하대도 깔끔하잖아요. 근데 이 집은 술병들이 여기저기 놓여있었고 남은 음식쓰레기와 더러운 옷견지들이 마구 널려있어 앉을 곳도 마땅찮았어요. 티비만 보고 있던 그들 눈빛엔 광채도 없었고…'


3형제 빈곤퇴치대책을 강구하던 끝에 5월, 그는 촌의 낡은 활동실을 개조하고 3000여원의 랭장고도 사들여 그들을 그곳에 들어가 살도록 했다. 이어 김서기는 그들에게 사상설득을 진행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생활에 대한 의욕을 북돋아줬다. 맏이와 둘째는 농작물가정농장과 촌민토지지분모식(土地入股)에 가입해 토지임대료를 받고 년말이면 두둑한 보너스를 배당받을 것을 권고했으며 막내는 외국로무를 나가 다양한 경험을 쌓을 것을 희망했다. 갈팡질팡 망설이는 3형제를 보고 김서기는 '명령'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만이 이들을 위한 길이였기 때문이다.


'1년을 시험 삼아 한번 해봅시다. 안되면 다시 저를 찾아오세요. 어떻게든 수입이 고정되여야 장가도 갈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해 년말까지 3형제의 년평 균수입은 2015년의 1599원에서 7526원으로 대폭 상승됐다. 정기없던 그들의 눈빛들은 삶에 대한 신심으로 가득했고 1년도 안돼 빈곤해탈에 성공하였다.


최근 다시 방문한 그들의 집은 깨끗이 정돈되여 있었다. 맏이 조경철씨는 '현재 저는 촌의 소사양합작사에서 사양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수입은 달마다 2000원에 달합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빈곤해탈은 우리에게 꿈같은 말이였죠. 지금은 목표도 생겼어요, 바로 돈을 모아 장가가는 것이지요 하하하…'라고 전하며 김서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얘기도 전했다.


'빈곤을 일으켜준 것보다 희망을 북돋아준 것, 그것이 더 감격스러워요!'


'치부, 반드시 치부'


2년 사이, 촌의 빈곤호수치는 128가구 266명에서 10호 11명으로 줄었으며 올해안으로 전부 빈곤해탈을 이룩할 것이라고 김서기는 밝히고 있다. 빈곤퇴치의 치열한 과정과 그 현장은 그야말로 연기가 없는 전쟁판을 련상케 한다.


김서기는 촌에 주재하는 그날부터 촌과 촌민에 대한 철저한 료해와 연구를 진행해왔는데 현재 조선족 마을의 상황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마을도 청년로동력이 없고 로령화인구가 많으며 대량의 토지가 제 구실을 착실히 못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것은 자나깨나 김서기의 고민거리였다. 최종으로 촌의 집체경제발전의 중점을 현유 토지자원에 놓기로 했으며 이를 돌파구로 삼았다. 수입을 증가하고 민생을 개선하는 것을 원칙으로 주와 시, 진과 촌과 밀접히 교류함으로써 군중이 진정 발전전경을 내다볼 수 있게 하였다. 2016년, 화남촌은 투자가 161.8만원, 년말 배당금 5만원에 달하는 70헥타르 경작지를 조정하여 전업합작농장을 설립했는데 현재까지 56명의 빈곤호들이 가입된 상태이다. 그외 50만원의 금융대부금으로 돼지사양항목을 쟁취하기도 하였다. 2016년까지 배당금은 8만원에 달했는데 촌민대표대회 토론을 거쳐 80호들에 1000원씩 배당금이 주어졌다. 거기에 담비와 당나귀 사양항목으로 효익자금 5만원까지 더해져 화남촌의 대부분 빈곤호는 드디어 빈곤해탈표준에 도달하였다.


2017년초, 촌에서는 '일품록'(一品绿)농작물재배전업합작사를 설립해 150헥타르에 달하는 토지를 조정, 165만원을 투입하여 연변주심계국과 함께 화남촌 집체산업항목을 대폭 발전시키기로 결정했으며 농기계설비자금 22.05만원도 쟁취하였다. 30헥타르 고표준농전항목으로 240평방미터에 달하는 묘목 비닐하우스 12채에 50만원 상응한 농기계설비와 50만원의 자금을 쟁취해 400평방미터에 달하는 알곡창고를 세워 전업농장 규모있는 발전을 이룩하고 다원화 특색산업으로 되게 했다. 그밖에 150만원을 투입해 외양간을 세웠는데 현재 총 100마리의 소를 키우고있으며 북경가신관광정보자문회사와 '토장군'생태유기농산품 브랜드를 출시해 촌 집체경제수입에 톡톡한 한몫을 하게 하였다.


7.31평방킬로미터의 동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한 사람들의 '자랑스러운 화남촌'을 그는 가꾸고 싶다. /류설화 연변특파원


전 촌 기초시설과 도로경화률, 록화피복률, 전기사용률이 모두 100%에 달했고 태양에너지 가로등 60개, 쓰레기통 28개, 2000미터의 도랑, 2300미터의 울타리, 80개의 화장실 등을 설치해놓은 것도 김서기의 노력과 갈라놓을 수 없다. 한편 성 수리청의 860만원의 자금을 쟁취하여 3000미터 방뚝, 50개의 철대문, 2개의 문화광장, 2개의 문구장 등 '내집건설'에도 김서기는 수없는 노력들을 해왔다. 민생이란 다만 먹고 입고 쓰는 것의 생계의 뜻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촌민들의 '정신치부'에도 심혈을 기울였는바 '농가책방'을 만들어 책향기 그윽한 문화농촌을 만들고자 애 썼다…


진정으로 매력 향촌을 가꿀 것


때로는 농부로, 때로는 친구로, 춘경추수 때 고된 농사일부터 자질구레한 생활의 일각까지 무릇 촌민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남새하우스를 만드는 일도, 어깨가득 멘 비료를 대신 옮겨주는 일도, 약 살 형편이 안되는 빈곤호께 선뜻 자신의 의료카드를 건네주는 일도, 아들 생각에 눈물 흘리는 독거로인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일도 모두 김서기의 몫인듯 했다. 송알송알 배인 진정으로 그는 촌민들의 가족이 되여주었고 동반자가 되여주었다.


그가 촌에 주재하기 시작해서부터 현재까지 총 255명의 빈곤호가 빈곤해탈에 성공하였다. 한명 또 한명이 빈곤에서 해탈될 때면 말못할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동시에 그 다음 사람은 또 어떻게 치부를 도와야 할까 하는 고민으로 그는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했단다.


초심을 잃지 않고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빈곤퇴치 일선에서 자신의 청춘을 태운 김성걸 제1서기, 촌에는 할일이 여전히 많단다. '일품록' 브랜드 가공산업 프로젝트, 67헥타르의 수전항목, 옥수수와 벼, 밀과 좁쌀 재배 항목, 100만원을 투입하는 량식창고와 농기계보관창고 건설… 그밖에 조선변경인 남평진으로 향하는 길 량옆에 꽃바다를 앉혀 국경관광에 한몫 하는 것, 독거로인들을 위한 '양로의 뜰'을 가꾸는 것, '채소정원'으로 사람들께 심고 거두는 재미로 쾌적한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


촌의 당조직과 촌의 기초시설, 촌을 이끄는 산업과 촌을 가꿔가는 사람들 인격 등 4개 매력으로 향촌진흥의 최고치를 올릴 것을 꿈꾸는 그는 삼복기간의 찌는 날에도 촌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류설화 연변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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